2017년 올해는 세계 미술계에 특별한 해입니다. 2년, 5년 혹은 10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들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개최될 뿐만 아니라, 공통적으로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전시는 독일의 도시 카셀에서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입니다. 올해 14회째로 5년마다 도시 전체를 ‘100일의 미술관’으로 만드는 이 현대미술전은 1955년,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이 과거를 반성하며 시작됐습니다. 이제는 ‘시대와 호흡하는 예술’의 집합소가 되어, 폐허 속에서 재건한 정신의 ‘도쿠멘툼Documentum’, 즉 ‘증거의 기록’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이런 오랜 성찰의 힘 때문일까요. 아직 많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독일은 지난 5년간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고, 미국이 거부한 세계 기후변화 협약 실현에 노력하고, 탈핵에도 앞장서며, 유럽연합(EU)의 위기 해결에도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의 <카셀 도큐멘타>도 불확실성의 세계화, 극심한 양극화, 전쟁과 난민, 혐오의 인종주의, 파괴되는 전통 등 당면한 인류의 문제들을 담고 있는데요. 한 나라의 국민이기에 앞서 세계의 시민으로서 숙고하며 길을 찾아보는 시간. 올해 전시되는 1,000여 점의 작품 중 나눔문화가 주목한 5점의 작품을 나눕니다. 글 | 윤지영(글로벌평화나눔팀장)


금서禁書로 만든 정신의 신전 ‘Parthenon of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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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thenon of Books, Marta Minujin ⓒDaham Choi <하퍼스 바자>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독일의 시인 하이네) 바로 카셀이 그러했다. 1933년 독일 총리가 된 히틀러의 나치당은 카셀의 프리드리히 광장에서 금서 2,000권을 불태웠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생산지가 된 카셀은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프리드리히 광장에는 불탔던 금서가 돌아온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르헨티나 미술가 마르타 미누힌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거대한 철골 구조물에 전 세계에서 기증받은 10만 권의 금서를 매달았다. 최초의 민주주의가 꽃핀 아테네의 신전 그리고 인류 정신의 성전인 금서. 이로써 프리드리히 광장은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압도하는 위엄에 숙연함까지 느껴지는 ‘Parthenon of Books’에는 “하나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라는 격언이 생생히 살아 숨 쉰다. 여기 한 권 한 권의 금서들은 시련 속에서도 영혼의 빛을 잃지 않았던 정신의 표상이자 불온한 도전이었으며 저항의 사건이었다. 당대의 기득권이나 대중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에 두려웠던 그러나 도래할 수밖에 없었던 미래의 씨알들. “책이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마르타 미누힌) 전시가 끝나면 이 책들은 시민들에게 나눠질 예정이다. 


난민선에서 들려오는 노래 ‘Sonic Borders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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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 Borders 2, Guillermo Galindo ⓒAP


올해에만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이 2,400여 명. 푸른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은 국경을 봉쇄하고, 불법 브로커들은 난민들을 착취하고, 우리는 저 죽음 앞에 무력하다. “우리는 누군가와 고통을 나누는 울음의 경험을 상실했다.”(프란치스코 교종) 멕시코 예술가 기예르모 갈린도는 얼어붙은 마음에 ‘난민선의 노래’를 흘려보낸다. 그리스 해안에서 발견한 난민선 잔해에 북을 달고 현을 달아 악기로 개조한 작품 ‘Sonic Borders 2’. “내 목표는 아름다운 사운드가 아니다. 악기의 재료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는 것이다.”(기예르모 갈린도) 저 부서진 난민선이 들려주는 소리는 무엇인가. 어느 고향 땅의 폭격소리, 어두운 바다 위 두려움의 울음소리, 그리고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기도소리. 세상의 잔인함과 자신의 무력함에 심장을 다쳐버린 사람은 무심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귓가에 머무는 저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해 아래 드러난 세계화의 ‘감춰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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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Point Sekondi Loco, Ibrahim Mahama ⓒHaupt & Binder


아프리카 가나 출신 이브라힘 마하마는 세계 곳곳에서 커피, 곡식, 광물 수송에 사용되는 마대 천들을 모아 자원자들과 함께 바느질로 엮었다. 그렇게 완성된 거대한 천은 카셀 입구의 대리석 성문을 감쌌다. 이것이 바로 화려하게 위장된 문명의 본 모습이라고. 유럽 제국의 침략과 착취의 역사, 세계화의 풍요를 떠받치고 있는 ‘감춰진 노동’이 해 아래 드러난 순간이었다. 


팔레스타인 ‘비극의 시작’ 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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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to 418 Palestinian Villages Which Were Destroyed, Depopulated, and Occupied by Israel in 1948,Emily Jacir ⓒhugoboss


1948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불법 점령했다. 어느덧 70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늘도 귀향을 꿈꾸며 떠나온 고향 집 열쇠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팔레스타인 출신 에밀리 제시어는 1948년 당시 이스라엘이 파괴한 418개 마을 이름을 난민 텐트에 새겼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리라’는 믿음. 팔레스타인 비극의 시작점이 된 마을과 사람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이유다. 


뿌리 깊은 ‘반란’ 을 꿈꾸는 인디고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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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Uprising), Aboubakar Fofana ⓒRoman März


다양한 농도의 ‘인디고 블루’ 면직물, 그 아래 인디고 화분들이 전시된 이 평온한 작품의 제목은 놀랍게도 ‘반란Fundi’이다. 아프리카 말리의 예술가 아부바카르 포파나는 거의 사라졌던 서아프리카 5천 년 전통의 천연염색을 되살려냈다. 인디고와 면화 모두 고향에서 직접 재배하고, 면직물은 마을 어른들이 전통방식으로 제작한다. 화학 합성료를 쓰지 않는 박테리아 발효는 수개월이 걸리는 더딘 과정이지만, 그에게는 “하늘과의 친교”의 시간이다. 현대적 생산양식과 가치관을 전복하는 그의 작업은 ‘아름다움’으로 최종 완성된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맑고 깊은 천연 인디고 블루의 색감. 자신의 기술이 “경탄하고 소중히 여기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꿈은 직접 농사지으며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는 근거지를 만드는 것. 기술과 예술에 삶까지 더해가는 그의 ‘반란’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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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나눔문화 격월간 회원소식지
  <나누는 사람들> 2017년 7-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눔문화 후원회원에게 전해지는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문화의 활동 소식과 우리 시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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