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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놀이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국의 ‘줄타기’. 줄타기 인생 40년, 이 시대 최고의 ‘줄광대’ 김대균(51) 명인은 국내 유일한 ‘줄타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그는 故김영철 명인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하지만 스승은 그가 열두 살이던 1979년 중풍으로 쓰러졌고 1988년 작고하고 말았다. 줄타기 명맥이 끊길뻔한 순간이었다. 김대균 명인은 쉼 없는 공부와 연습을 통해 ‘줄판’의 원형을 부활시켰다. 줄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그가 결국 줄 하나에 의지해 푸른 하늘을 날아오른 것이다. 우리 또한 ‘삶’이라는 ‘줄’에 의지해 살아가는 길. ‘나눔문화 15년 회원’ 김대균 명인의 줄타기 인생이 전해주는 희망을 듣고자 과천 줄타기보존회 전수교육장을 찾았다.  인터뷰, 정리 | 이현지(회원섬김팀장), 최재희(대안생활문화팀장)

*줄타기란 | 줄광대가 어릿광대와 함께 삼현육각의 연주에 맞춰 기예(잔노릇), 재담, 소리를 하는 전통 놀음이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를 ‘판줄’이라고 한다. 공연은 마당에 작수목을 세워 줄을 건 뒤, 고사상을 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악단의 연주가 시작되면 줄 위에 올라탄 줄광대와 줄 아래 어릿광대가 재담을 주고 받는다. 줄 위에서는 40여 가지의 잔노릇이 구사되는데, 백미는 ‘살판’으로 줄 위에 일어서서 뒤로 뛰어올라 공중회전을 한 다음 줄 위에 앉는 동작이다. 그래서 살판을 벌이기 전에 ‘잘 하면 살 판이요, 잘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재담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살판을 끝으로 신명 나는 줄판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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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민회관 대극장 공연(2015.9.20) ⓒ한국효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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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써온 부채와 초립, 각반과 공연의상이 들어있는 김대균 명인의 가방 ⓒ권혁재 



처음 줄을 탄 순간이 궁금합니다. 40년이 넘었지요?
처음 줄을 탄 것이 1976년, 9살 때였죠. 어릴 때 아버지가 고향 정읍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용인 민속촌으로 들어갔거든요. 그곳이 저에겐 집이자 놀이터였죠. 거기서 매일 스승님의 공연이 열렸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옆에서 형들은 풍물을 치고 누나들은 춤을 추고. 저도 덩달아서 까불까불 뛰어놀고 줄에 매달려 놀았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줄타기를 시작했어요.

아주 어릴 때 스승님을 만났네요. 어떤 분이셨나요?
시골집 할아버지처럼 아주 인자하셨어요. 무릎제자가 되어 줄타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12살 때 스승님이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이후로는 아버지와 함께 스승님 병수발을 들며 구술로 가르침을 받았죠. 스승님이 말로 일러주시면 오랫동안 생각하고 줄 위에서 혼자 연습하면서 기예를 익혔어요. 줄을 탄 지 7년 만인 1982년 민속촌에서 첫 공연을 했어요. 그 후로 민속촌 전속 공연만 7,000번 넘게 했지요.

혼자 줄 타면서 어려움도 참 많았겠어요.
1988년, 이십대 초반에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많이 힘들었죠. 태산 같던 선생님이 안 계시니 공허해졌습니다. 줄만 탈 줄 아는 촌놈이 그때 처음으로 술, 담배를 배웠죠. 돌아보면 사춘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방황하면서도 매일 아침이면 서낭당(무속 신을 모시는 사당)에 올라 묻고 또 물으면서 답을 찾았어요. ‘내가 줄을 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그만두면 오랫동안 전승돼온 우리 줄타기가 없어지는구나.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해야겠다!’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 나니 길이 보였어요.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재담을 풍성하게 익히려고 故이동안·성우향 선생님을 찾아뵙고 줄소리와 재담, 춤, 판소리를 배웠어요. 익힌 것은 전국 여러 현장으로 공연하러 다니며 시도해보았죠.  

사라질뻔한 줄타기 명맥을 이어냈네요. 계승뿐만 아니라 발전시켰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순한 재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로서 ‘줄타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줄 위의 기예만이 아니라 어릿광대와 함께 반주에 맞춰 줄놀음을 하고 관중이 참여하는 ‘판줄’, 그 원형 말이죠. 그런데 연구된 게 거의 없었어요. 아예 관심도 받지 못했죠. 예술대학교 과목도 아니고 탈춤처럼 대학동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줄타기는 고도의 집중력과 오랜 기간의 수련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예술이라서 하려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서 ‘내가 복원하자’고 결심했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안동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주중에는 이론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공연을 했어요. 1999년에 드디어 판줄 복원 공연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마지막 공연 이후 20년 만의 재현 무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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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보존회 전수교육장에서 ⓒ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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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문화광장 공연(2003) ⓒ줄타기보존회


줄 끝을 봐! 떨어질 곳부터  

    쳐다보면 워쪄? 바닥을 보는 

    그 시선 때문에 떨어지는 거야
     김대균 명인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했던 말


그동안 줄타기라고 하면 한 사람이 줄 위에서 기예를 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판줄의 어울림 자체가 줄타기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판줄을 복원하여 2000년에 최초의 줄타기 인간문화재가 되고, 2011년에는 한국의 줄타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요? 대단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저마다의 줄타기가 있는데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한국의 줄타기가 등재된 이유는 줄타기 기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현육각의 음악, 줄광대의 재담까지 어우러진  ‘공연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을 줄에 올리는 순간마다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 있어요. ‘나는 관객을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최고의 즐거움을 줘야겠다!’ 공연자가 정성을 다하면 관객은 호응으로 답합니다. 그렇게 서로 호흡을 주고받으며 사다리를 타듯 정점으로 향해가요. 팔부능선을 넘어 줄판 전체에 신명이 붙으면 ‘저절로’ 동작이 나옵니다. 바로 그 순간이 ‘신명 나는 순간’입니다. 굿판에서 무당이 접신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 순간엔 발목도 무릎도 발바닥도 아픈 줄을 몰라요. 그렇게 한 판 놀고 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좋은 기운이 한참을 갑니다.

‘신명풀이’, 참 좋은 말입니다. 줄판에서의 신명풀이가 무엇인지,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신명풀이’는 호흡을 나누는 것, 그 순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민속 예술의 본질이죠. 신분 사회에서 광대는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으면서도 풍자를 통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잖아요. 저는 군사독재 시절인 80년대에 대학으로 공연하러 가면 군부독재나 사학비리 같은 이야기를 풀었고 함께 최루탄도 많이 마셨죠. 그리고 ‘신명풀이’는 말 그대로 푸는 겁니다. 만약에 관객이 제 부모님 세대라면, 연세가 80, 90이 된 분들은 참 고생스러운 시대를 살아오셨잖아요. 그러니 ‘당신들이 굳건히 잘 살아주셨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풀어주는 거죠. 그게 살아있는 줄타기이자 가장 큰 전승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으면 그저 기술이지 어떻게 예술이 되겠어요. 

기예 훈련만이 아니라 재담 내용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재담 준비? 따로 할 게 있나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같이 고민하고, 남들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는 거죠.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6개월간 하늘을 안 봤어요. 어른이라는 게 창피해서요. 수백 명이 수장되는 이런 세상 꼬락서니를 그냥 볼 수가 없었죠. 공연도 멈추고 6개월간 시골에서 농사짓고 삽질하며 살았어요. 바깥 활동은 학교 수업만 나왔어요. 그런 삶의 고민들이 말로 나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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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문화 회원들을 위한 줄타기 공연(2002)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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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보존회 전수교육장에서 ⓒ권혁재


사람들이야 나보고 
명인님 선생님하고 부르지만
나는 광대지, 줄 타는 줄광대!
김대균 명인


40년 줄타기, 그 줄 위에 시대와 사람이 담겨 있네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인데요. 선생님에게 줄이란 무엇인가요?
나한테 줄이라…. 이 질문이 항상 제일 어려워요. 예전엔 인생에 비유하곤 했는데, 나이 오십에 인생을 논한다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그렇게 이야기 안 해요. 굳이 말하자면 ‘거울 속의 나’라고 할까요? 줄에 오른 모습이 인생처럼 비춰질 수도 있고,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이 줄 위의 인생처럼 보일 수도 있고. 평생 줄타기를 해왔는데 줄에 있을 때 가장 나답더라고요. 결국 ‘줄’이 곧 ‘나’인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줄에 오르나요? 무섭지는 않나요? 
줄에 오르면 무념무상이라^^ 줄 위의 공간은 무한대로 펼쳐져 있잖아요. 줄 타는 게 무서운 건 떨어질까 봐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줄타기의 시작은 잘 떨어지는 걸 배우는 거죠. 그리고 몸이 떨어지기 전에, 시선이 먼저 떨어져요. 아이들과 연습할 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줄 끝을 봐 줄 끝을! 떨어질 곳부터 쳐다보면 워쪄? 바닥을 보는 그 시선 때문에 떨어지는 거야”.

줄타기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에도 큰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줄광대로서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매일 새벽 6시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여 줄타기 연습을 시작하는데, 저는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줄타기한다고 세상이 알아주겠습니까 아니면 돈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디선가 제 공연을 보고 스스로 배우겠다고 찾아온 아이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앞으로는 저마다의 개성을 펼치겠죠. 어떤 아이는 기예가 뛰어날 것이고, 또 다른 아이는 재담을 잘할 것이고. 이렇게 아이들이 앞으로 자신만의 줄타기 판에서 각자 다른 장기를 펼쳐나가리라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어린 시절 제게 민속촌이 놀이터였던 것처럼 과천에 줄타기 전수관을 마련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실컷 뛰놀며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예술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야만 예술을 배울 수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가슴 한 켠에 전통문화를 심어주고 싶어요. 그 길에 제가 디딤돌이 되어줘야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 스스로 공동체와 세상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올해로 나눔문화 15년 회원! 첫 만남이 기억나세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짬밥이^^ 제법 됐네요. 2002년 나눔문화 회원님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공연을 하며 처음 만났죠. 그해 나눔문화 후원모임에 가서 회원이 되었고요. ‘나눔문화 같은 단체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십시일반 한 거죠. 자기 자신만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 전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해요. 그래서 나눔문화가 더 잘됐으면 합니다. 나눔문화가 20살 되는 날, 줄 걸어놓고 한 판 신명 나게 놀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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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줄에 앉은 이현지 연구원, 김대균 명인, 최재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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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나눔문화 격월간 회원소식지
  <나누는 사람들> 2017년 7-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눔문화 후원회원에게 전해지는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문화의 활동 소식과 우리 시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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