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최근에 책『촛불혁명』을 펴낸 김예슬 사무처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박노해 시인과의 첫 만남, <대학생나눔문화>에서의 활동 그리고 
2010년 고려대학교에 대자보를 부치며 '대학거부' 선언을 한후 
지난 7년의 시간까지 생생한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촛불 혁명'을 넘어 '삶의 혁명'을 꿈꾸는 김예슬 처장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꿈이 뭐냐고 재차 묻던 시인
그제야 깨달았죠 
꿈은 직업보다 크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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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강진이 발발한 지난 15일, 세간의 관심은 피해 상황보다 다음날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예정대로 치러질지에 더 쏠렸다. 지진으로 다친 이들과 삶의 터전이 무너진 이재민들에겐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랬다.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온 아이들에게 가격표가 붙는 경매입찰과 비슷하다. 요즘은 경매를 거친 뒤에도 스펙을 쌓거나, 자격증, 공무원 시험 같은 2차, 3차 입찰을 통과해야 하지만 첫 가격이 매겨지는 대입의 중요성엔 미치지 못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삶이 보장된다’는 유일신앙이 지배하는 한국의 수능날 풍경은 해외 언론들의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학벌체제는 남북분단보다 더 심각한 한국 사회의 ‘기본 모순’이다.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인 김예슬(31)은 한때 ‘학벌트랙’에서 함께 경쟁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우수한 경주마였다. 그는 그러나 어느 날 트랙의 울타리를 부수고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3년생이던 그가 2010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구내 게시판에 붙인 ‘자퇴선언’은 한국 사회에 파문을 몰고 왔다.

학벌체제의 가장 큰 이벤트인 수능을 이틀 앞둔 지난 21일 김예슬을 만나 학벌트랙을 이탈한 이후의 삶에 대해 물었다.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서울 부암동 ‘라카페’에서 만난 김예슬은 “자퇴 이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배우면서 내 세계가 조금씩 넓어졌다”며 “내 안에 나도 모르거나 어쩔 수 없이 억눌러왔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돈을 들인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알아챈 이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며 “기본소득 같은 최소생존비용이 제공돼 청년들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면 학벌체제에도 변화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예슬은 자퇴 이후 비로소 진심으로 울고 웃을 줄 알게 됐고, 그만큼 성장했다. 물론 시장가치로는 매기기 어려운 성장이겠지만.


"학교에서 키워야 할 건, 생각·손발·우정의 힘"

- 수험생 당사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열병을 앓는 시기이기도 하다.

“포항 지진과 관련한 소식 중 가장 먼저 뜨는 게 원전과 수능이더라. 수능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걱정임을 지진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초·중·고 12년의 결과가 하루에 결판나는, 그 결과가 아이의 수십년을 좌우할 거라고 믿는, 불행하면서 불안한 구조가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 수험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나눔문화에서 개최한 라오스 사진전을 보러온 고교생들이 소수민족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공부하는 사진을 보고 감탄하더라. ‘우린 배움의 열정이 없는데, 저 아이들은 사진으로도 열정이 느껴질 정도’라고.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도 하더라. 지금의 청년들은 ‘꿈을 찾아내는 게 꿈인 세대’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 어릴 적부터 쉴 틈 없이 지식이 주입되다 보니 배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당연할 것 같다. 배움의 ‘단식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도서관 분량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초·중·고 12년간을 의자에 붙어 앉아 교과목의 지식들을 암기해야 하는 처지다. 지나고 보니 살아가는 데 쓸모 있는 지식도 많지 않다. ‘꿈이 없고 하고픈 게 없다’고 하는데 12년간 공부 말고 다른 걸 좀 해봐야 꿈도, 자아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지식의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뇌 발달에 결정적인,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의 아이들을 꼼짝없이 의자에 묶어 놓고, 배움을 강요하는 건 고문이다. ‘100세 시대’에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것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나눔문화에서 여는 학교에서 10대들을 접하면서 ‘생각의 힘’ ‘손발의 힘’ ‘우정의 힘’, 이 세 가지만 제대로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앞가림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어떤 순간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박탈당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 교과목뿐 아니라 위험 대처능력을 기르는 실습교육도 필요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도록 체력도 길러야 하지만 모든 게 입시로 쏠리다 보니 생략돼 버린다.

“위험도 삶의 당연한 속성인데 학교는 이런 위험을 원천 차단한 ‘무균실’ 같은 공간이 돼버려 저항력을 기를 수 없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부딪치고, 스스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서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하고픈 일이라면 밤을 새워도 피곤함을 못 느낀다. (오히려) 번아웃할 대상을 못 찾아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자아실현 과정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한 일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내 삶과 시간을 따로 찾으려 한다. ‘언젠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 돼’ 하고. 그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어린 시절 여기저기 부딪쳐가며 스스로가 어떤 존재임을 깨우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안에 나도 모르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었다"

- 대학이든 사회든 ‘질문’이 많이 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란 말에서 보듯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대학(大學)은 ‘큰 배움’이고, 이는 ‘큰 물음’에서 시작할 텐데 ‘나는 누구이고,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물음을 스무 살 넘도록 내 자신에게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었다. (자퇴) 이후로는 남에게도, 나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졌다. 대학 2학년, 나눔문화에 처음 왔을 때 박노해 시인이 ‘꿈이 뭐냐’고 물으시더라.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하니 빙긋 웃으시면서 다시 ‘꿈이 뭐냐’고 묻더라. ‘아!’ 하고 깨달았다. 꿈이 직업보다 훨씬 큰 거라는 걸. (내 인생에서) 결정적인 질문이었던 것 같다.

- 자퇴 이후 7년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특정한 활동이나 사건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세계가 조금씩 넓어진 것 같다. (고공농성을 하기 위해) 철탑 꼭대기에 올라간 노동자들부터, (송전탑 설치에 반대해) 밀양 산속에서 몇년째 저항 중인 할머니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분들이 모두 하나의 사건이자, 세계였다.”

- 대학을 그만두는 과정에서도 고민했겠지만 학벌체제를 깨뜨릴 방안은 뭘까.

내가 하고픈 일, 나답게 살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면, 예컨대 ‘기본소득’ 같은 최소생존비용이 제공된다면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나랏돈이 잘못 쓰이는 걸 바로잡고 독점과 부패를 근절해 복지 토대를 강화하면 청년들이 획일화되지 않은, 다른 길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 복지의 토대가 강화되면 ‘단선사회’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성공에 대한 잣대나 가치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듯하다. 10~20대가 선호하는 직업은 여전히 공무원, 대기업 사원이지만 ‘돈과 안정에만 매달려 살고 싶진 않다’는 가치관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본다.”

- 대학이 문제라면서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 대학 진학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사회가 바뀌었다기보다, 포기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포기일 수도, ‘직시(直視)’일 수도 있다. 이미 아무도 ‘대학을 진리의 전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에 돈을 들인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지고 있다. 초·중·고·대학까지 16년 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원은 들 텐데, 그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걸 하면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한 거다. 좋은 대학을 못 갈 거라고 예상되는 고교생들 중에서는 쿨하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이들도 주변에 있다.”

- 그래도 경제 생태계를 다원화하지 않으면 학벌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면 대학에 목맬 이유가 없다.

촛불혁명에서 삶의 고통과 열망이 많이 표출됐고, 시급한 과제가 5개로 압축됐는데 경제민주화도 그 안에 들어있다. 그 외에 적폐청산, 남북 화해, 젊은 농촌, 생태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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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3월까지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기록한 <촛불혁명 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를 출간했다.

- 촛불 현장을 계속 지켜왔는데 학벌사회를 바꿔보자는 청년들의 열망을 느꼈나.

“촛불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정유라의 이대 특혜입학이었으니, 분노의 목소리가 많았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느낀 건 개인은 진화하고 있는데 사회구조는 낙후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전 지구가 연결돼 있는 시대이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똑똑하고 재능도 많은 반면 체제는 너무 낡았다.


"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온 7년"

- 자퇴할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지금은 어떤가.

“믿어주신다. 자퇴할 당시 부모님께 미리 말씀 안 드렸다. 대학을 그만두러 가는 그날, 엄마가 뭔가 느끼셨는지 교수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셨다. 밤새 쓴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를 한 뒤 자퇴서를 내러가는 길에 엄마와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엔 많이 말리셨지만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신 듯하다. ‘나쁜 짓 하는 거 아니고, 틀린 길 가는 거 아니니 믿는다’는 마음으로 7년간 지켜봐주고 계신다.”

-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인연 따라’ 산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데.

“계획을 세운다고 그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웃음). 좋은 사람을 따라가면 좋은 길이 보이는 것 같더라. 선후배들과 젊은 친구들 10명과 함께 나눔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세월호·천안함 진상규명, 4대강 복원, 노동 등 여러 부문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좋은 삶을 모색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적은 소유로도 기품 있게’ 살아가는 방식 같은.

- 적은 소유로도 기품 있게.

“나눔문화가 쓰는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회운동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지향한다. 좋은 삶이 돈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태도도 멋있고, 그걸 꿈꾸고 있는 것도 좋다.

- 지난 7년간 스스로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달라지고 성장한 것 같은가. 손기술이 늘었다든지.

“(웃음) ‘뱃속에서부터 웃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기쁘게 웃는 힘, 진심으로 슬퍼서 우는 힘이 커졌다고 할까. 많이 울고 웃으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예전엔 울고 웃는 능력이 마비됐던 것 같다. 손을 쓰는 일도 많아졌고 (솜씨도) 늘었다. 나눔문화에서 처음 배운 게 테이프 붙이기였는데 이곳에선 떼는 이의 수고를 덜기 위해 테이프 끝을 접더라. 사소하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거다. 하나의 일이 세계와 연결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절실히 알리고 싶다 보니 글을 쓰게 됐고, 책의 에디팅도 하게 됐다. ‘내 안에 나도 모르거나 어쩔 수 없이 죽여왔던, 엄청나게 큰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온 7년이었다고 할까.

- 수능을 치른 대학 예비생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결코 시험의 등수가 고스란히 인생의 등수가 되지는 않을 거다. 정말 고생많았다. 우선 잘 자고 잘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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