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2월 7일 ‘나눔문화 17주년 후원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270여 회원님들의 우정과 나눔으로 따뜻했던 시간, 마음 모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매년 후원모임에서는 박노해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데요. 그 이야기 전문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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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다들 얼굴마다 별이 빛나시네요. 전생이 아니라 이생에 나라를 구하신 (웃음) 얼굴이라서 눈이 부십니다. (박수)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일 세 가지가 있죠. 사는 것, 사랑하는 것, 죽는 것. 지난 한 해 참으로 큰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인간에게 있어 위대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살림이 어렵고 나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저 국경 너머 생존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위해, 내 소중한 돈을 후원하는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내가 살아서 여기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올 한 해 정말 잘 사셨습니다. (박수) 고맙고 장하고 자랑스럽다고, 나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힘찬 박수 한번 보내면 좋겠습니다. (박수)  


올해 세 가지 ‘시대의 징표’ 

올해 제가 주목한 세 가지 ‘시대 징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촛불혁명입니다. 우리 모두가 직접 한 일이니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촛불혁명과 정권교체 이후, 우리 사회에 희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풍년에 배고픈 사람이 더 서럽다고 혹시 나만 힘들고 외면당한 듯한 소외감 때문에 더 절망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나눔문화 연구원들과 전국 곳곳의 힘든 현장을 둘러보니 그분들이 더 담대하게 격려와 용기를 나눠주셨습니다. 
또 한편 냉정한 눈으로 보면, 변한 게 별로 없는 것만 같습니다. 집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예전보다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무언가 달라진 나는, 달라지지 않은 구체적 일상과 현실에 더 불화하고 부딪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힘 있게 좀 밀어붙이고 확 바뀌면 좋겠는데, 많이들 답답하시죠? 이게 70년 적폐의 역사 현실입니다. 
속이 타고 답답할 때면 제가 늘 조용히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죄가 파생되어 나오는 두 가지 주된 인간적인 죄가 있다. 그것은 조급함과 태만함이다. 조급함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카프카) 우리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꾸준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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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인간의 날들은 어디로 

둘째는, 소위 ‘4차산업혁명’입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이걸 4차산업혁명이라고들 하죠. 어느덧 우리 일상은 세계화 디지털화 개인화로 훌쩍 진화해, 4차산업혁명의 담론과 정책들이 깊이 생각해보고 검토해볼 틈도 없이 진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종교는 ‘과학’이 되었습니다. 첨단 과학기술이 지구 인류의 산적한 문제와 생태파괴와 사회갈등을 해결할 ‘유일신神’이 될 거라는 신앙이 도래했습니다. 저는 과학에 대해서 늘 경탄하고 탐구하고 존중을 하지만 , 어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우리는 단 10년 사이에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4차산업혁명이 휩쓸고 나면 우리 삶과 인간성은 어떻게 탈바꿈되어 있을까요. 시간과 장소와 내 몸을 뛰어넘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소통되고, 유장한 것을 빠르게 뒤흔들고 나면 우리 정신도 마음도 그리 되어간다는 것이 지난 10년의 경험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냥꾼이 사냥감이다!’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습니다. 기계와 접속될수록 자연과 끊어집니다. 익명과 소통할수록 내 곁의 사람과는 경색됩니다. 기계가 자율 할수록 인간은 퇴화합니다. 가상이 현실이 될수록 현실은 가상이 됩니다. 사물과 연결될수록 나의 순수한 인간 능력과 주체성은 시들어갑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이고 무엇을 잃게 되는 걸까요. 4차산업혁명 가운데서, 인간의 날들은 어디로 갈까요. 우리를 진정 살만하게 할까요? 서로 돕고 나누는 힘과 감사하는 마음은, 사는 맛과 사랑과 우정은, 이제 가상현실과 AI 로봇이 가져다줄 것인지.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희망과 믿음과 자연, 그리고 내 곁의 친구들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지. 저는 오직 목적인 삶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만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박수) 


‘잔혹 소녀 소년’의 등장 앞에서  

마지막으로 제가 주목한 시대 징표는 잔혹 소녀, 소년의 등장입니다. 인천 초등학생을 살해한 두 여학생은 살인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역할 놀이’를 합니다. 친구를 집단 폭행한 강릉 여고생들은 사건이 알려지자 “팔로우 늘려서 페북 스타 돼야지”라며 웃음표를 날립니다. 그날 저는 아무 일도 못 하고 하루 종일 산을 걸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 괴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미래를 파괴하는 시한폭탄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아이들을 소시오패스, 반사회성 인격장애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친사회’적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문명 진보의 진정한 산물이 이 잔혹 소녀 소년들입니다. 이 아이들의 생애사에서 자신이 경험한 가정, 학원, 학교, 인터넷, 이 사회의 적나라한 내면성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이해할 능력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나이든 우리 세대는 불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인정이 많고 친구가 많고 자연의 감각지와 인간의 도리가 살아있는 소박한 인격의 사람들 속에서, 가난해도 온전성을 가진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과 정신은 대지와 마을 공동체라는 역사적 유산 안에서 생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그 몸과 정신의 거처가 애당초 다릅니다. “나의 탯줄을 묻은 곳은 차병원”, “내 고향은 잠실 아파트 단지”, “계절을 맛보는 곳은 마트”입니다. 거기다 매일 항생제와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자랍니다. 미세먼지와 방사능 공기와 산업축산 고기를 먹으며, 아이들 몸은 세포 구석구석까지 독을 품고 자랍니다. 괴물 소녀와 소년은 바로 정직한 몸으로부터 자라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인간의 문제는 ‘삶의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안쪽’에서, 

나의 일상과 내면에서 닥쳐오고 있습니다. 온전한 인간성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일이 혁명만큼 힘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좋은 삶이 혁명만큼 힘든 일이 된 시대 

불평등의 양극화와 각자도생의 사회, 무관심과 냉소와 익명성의 도시문명 사회, 오직 돈으로 말하는 물신의 사회. 그 거대한 인간성의 진공 가운데, 아이들은 무언가와 끊어진 만큼 무언가와 자연스레 연결되고, 단절된 만큼 손쉬운 어딘가에 소속감을 지닙니다. 성적과 돈과 외모 경쟁에서 밀려나 현실에서 무기력하고 말이 짧은 만큼, 자기만의 살아있음, 잔인한 살아있음, 사이버 현실에서의 존재감을 맛봅니다. 검색 한번으로 치밀하고 노련하게 살인을 하고 토막을 내고 은폐하고 자랑합니다. 제가 주시한 이 괴물 소녀 소년들의 한 특성은 소름 끼치도록 영리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순진성과 영악성을 오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잔인하고 노골적으로 금기를 깨는가가 잣대인 일베와 일진, 엽기 포르노와 약자 학대 영상, 완전 범죄 놀이, 파괴와 살상의 게임 현실이 아이들이 뛰놀고 꿈꾸고 달리는 일상의 환경입니다. 아이폰과 자란 최초의 세대, 마침내 ‘헬 게이트’가 열렸고 그곳이 소외된 아이들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의 근거지가 된 셈입니다. 
자연과 땅에서 벌어지는 일은 고스란히 내 몸에서 벌어지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내면에 길을 들이게 됩니다. 스마트 폰을 쥐고 사회의 실상을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이 아이들은 우리 시대의 ‘최고’와 ‘최악’의 끝을 다 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주요 문제는 사회 구조악에서, 그러니까 삶의 바깥쪽에서, 삶의 수단인 소유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의 문제는 삶의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안쪽에서, 사회 구조악이 곧바로 나 개인의 일상과 내면으로 내통하는 방식으로, 우리 정신을 변형시키고 우리 감각을 마비시키는 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정신’을 갖고, 온전한 인간성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일이 혁명만큼 힘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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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와 신뢰의 파탄이 악의 승리다

저는 이제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과 아이들을 안아주며 살았습니다. 국경 너머 울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많이도 토닥이고 안아주었습니다. 지금 월세를 살고 있는 산간 마을 아이들도 멀리서 달려 나와 안기곤 합니다. 그날이었습니다. ‘어금니 아빠’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방송을 탄 날, 전국의 가정마다, 교실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언니 오빠들 따라가지 말아라, 아빠 있는 친구 집에 가지 말아라.’ 이제 저는 제게 안기려고 달려오는 소녀 앞에서 멈칫, 뒷걸음질 치는 저를 발견하고 자책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이것입니다. 단 몇 건의 잔혹 범죄와 뉴스 유통으로 한 사회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고, 우리 인생의 최고의 행복감인 살아있는 인간관계와 우애와 신뢰가 파탄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의 완승, 의문의 완승입니다. 악은 공기처럼 퍼지지만, 선은 나무처럼 더디게 자라납니다. 불신을 씨 뿌리는 건 강력한 사건 보도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믿음은 나무를 심어가듯 아주 오랜 노고가 필요합니다. (박수) 


기적처럼 되살아나는 4대강의 희망 

이런 세계 가운데서도 그래도 저는 늘 유쾌한 기분으로 명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에 어떤 희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올겨울, 4대강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4대강 토건 공사 이후, 거대한 댐에 갇혀 흐르지 못한 강물은 녹조라떼가 되고 강바닥에 쌓인 토양은 썩어 들어가 독벌레 말고는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겨울에, 자취를 감췄던 백로와 왜가리, 백할미새가 금강으로 돌아왔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몇 년간 개체 수가 줄어 걱정이던 두루미도 저 히말라야 만년설산에서 날아와 낙동강을 찾았습니다.
4대강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강바닥에 켜켜이 쌓인 썩은 적토가 무엇으로 정화되기 시작한 걸까요. 촛불혁명으로 5년 만에 처음으로 4대강 수문을 열자, 지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썩은 토양을 씻어내면서 깨끗한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기 다슬기와 민물조개와 물고기들이 살아나 힘차게 소생의 움직임을 벌이면서 떠났던 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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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다 더 높은 차원에 선 사람  

지천의 맑은 물과 모래는 어디에서 흘러올까요. 우리가 당연한 듯 관심조차 주지 않던 저 백두대간 산자락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온몸으로 끌어 모아 내어주는 물방울들이 작은 물줄기가 되고, 개여울과 계곡물을 이루고, 지천으로 굽이치며 4대강으로 흘러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시대 희망의 한 상징으로 봅니다. 썩은 토양을 씻어내고 살려내는 것, 그것은 푸른 나무와 맑은 지류 같은 강인한 희망의 공동체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일 것입니다. 저 백두대간의 나무들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곧고 선한 마음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있는 사람들, 저마다 선 자리에서 이건 아니다, 이럴 수는 없다, 저항하고 고난을 감내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푸른 연대가 우리 사는 세상과 삶을 소생시키는 부활과 희망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박수)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도 꽉 막힌 4대강 댐을 열고 허물어내는 일, 철저하고 꾸준한 적폐청산입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악한 것을 타파하면 선은 올곧게 자라납니다. 그리하여 목적인 삶은, 좋은 삶은, 인격과 우애는, 사회보다 더 높은 차원에 선 우리 자신들이 먼저 살아내야 할 몫입니다. (박수) 



‘돈복’보다 위대한 건 ‘인복’입니다. ‘적금’보다 중요한 건 ‘적선’입니다. 

세계가 더 어려워져도 우리 같이 사는 것, 같이 우는 것, 같이 걷는 것, 

그것이면 우리 삶은 여정의 놀라움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좋은 사람에게 좋은 벗이 걸어오고 

올해 나눔문화가 17살입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고 늘 기대보다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년에는, 앞으로도, 쭈욱 그러려니~ 하셔야 할 것입니다. (웃음) 17년 동안 살아온 그대로 한결같이 ‘신뢰 사람 희망’의 나눔문화, 힘든 시간에 마음의 고개를 돌려보면 늘 거기 푸르게 자라는 믿음의 산이 되고 마음의 고향이 되는 나눔문화, 홀로 어둠 속을 걸을 때 곁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 같은 나눔문화가 되겠다고 분투할 뿐입니다. 
내 인생에서 나눔문화와 함께 걸어서 내가 세상에 푸른 믿음의 유산 하나 남겼구나, 인간의 날들이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함께하는 혼자’로 살아가는 참사람의 숲에서 근원적인 ‘삶의 혁명’에 나 또한 함께 했구나. 그렇게 10년, 30년, 100년 대를 이은 믿음의 가문, 희망의 가문을 이뤄가시면 좋겠습니다. (박수) 
‘돈복’ 참 좋죠. (웃음) 그러나 ‘돈복’보다 위대한 건 ‘인복’입니다. ‘적금’보다 중요한 건 ‘적선’입니다. 내년부터 살림경제가 훨씬 더 어려워지고 추워질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같이 사는 것, 같이 우는 것, 같이 걷는 것, 그것이면 우리 삶은 여정의 놀라움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벗이 걸어오고 좋은 일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다 잘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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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나눔문화 격월간 회원소식지
        <나누는 사람들>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눔문화 후원회원에게 전해지는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문화의 활동 소식과 우리 시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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