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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인의 종교’라고도 불리는 축구의 대제전.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에 장애인 축구단이 30년 동안 운영 중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신철순 <곰두리 사랑회> 회장(74세, 나눔문화 14년 회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국가대표 축구단 감독입니다. 무려 30년간 묵묵히 그리고 치열히 축구단을 지키며 장애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는 신철순 회원님을 서울 은평구에 있는 4평짜리 <곰두리 사랑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축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어요?
제가 다닌 초·중학교가 난지도 옆에 있었어요. 주변이 다 땅콩밭이고 옆에 고아원이 있었는데 일요일마다 고아원 아이들과 축구경기하고 그랬죠. 공 차다 배고프면 땅콩 모아 구워 먹기도 하고^^ 고등학교 축구선수 시절엔 前국가대표 감독인 이회택 선수랑 같이 뛰었죠. 대학교 졸업 후에 초·중·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으로 20년 넘게 활동했어요. 그 후부터 지금까지 곰두리 축구단과 인연이 되어 30년 넘게 해오고 있네요. (신철순 회장은 고교 감독 시절, 고교축구 지도자계의 신화로 기록되며 최고 지도자상을 받았고 제자 중에 조광래 前국가대표 감독이 있다. 조 前감독은 신철순 회장을 두고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평생의 스승”이라 했다)

Q. 곰두리 축구단은 언제 만들어졌나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할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을 급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축구협회 경기위원인 제게 장애인 축구팀을 꾸려 달라고 하는 거예요. 장애인들이 집 밖에 나오기도 힘든 시절이었는데, 감독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죠. 제가 맡아 전국의 복지관을 수소문해서 11명 선수를 뽑고 경기도 일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5개월간 합숙훈련을 했어요. 그렇게 처음 출전한 서울 패럴림픽 축구대회에서 4위를 했어요. 대단한 거죠. 아쉬운 마음에 대표팀 해단식 날 말했어요. “축구하고 싶은 사람은 일요일에 운동장으로 와라.” 그랬더니 전부 다 다시 나와 있는 거예요. 아! 이건 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었고, 그 선수들과 ‘곰두리 사랑회(축구단)’이 시작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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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서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있는 신철순님 ⓒ한겨레 강재훈


Q. 선수들이 축구하면서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어떤 선수들은 밥도 혼자 잘 못 먹고 잘 씻지도 못했어요. 가족들이 다 나와서 밥 만들어서 해먹이고 빨래도 해주면서 3년을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찾아오는 아이들이 계속 늘어 3개 팀으로 나눠서 훈련하고 서로 경기도 하게 됐죠. 국가대표로 태극기 마크를 가슴에 달고 나가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실력도 느는 게 보이더라고요. 힘들게 경비를 모아 해외 경기 나가면 교민들 중에 도와주는 분들이 꼭 나타나요. 그분들이 격렬한 환영을 해주는데 우리 아이들이 언제 그런 대우를 받았겠어요? 아주 신나는 거죠. 그래서 자꾸 기회를 주려고 해요. 

Q. 초기에 이런저런 고생이 정말 많았겠어요. 
그럼요.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일이 경기장 구하는 거였어요. 운동장 구하느라 평생을 뛰어다닌 거나 다름없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직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맨땅인데도 안 빌려주는 거예요. 지난 정권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1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래도 알음알음 도움 주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축구단이 열악해서 실무자를 두지 않고 자원봉사자들로만 운영하고 있어요. 현직 교사 한 분은 7년째 매주 연습에 나와서 볼보이에 식사 도우미 역할, 축구단 홍보까지 도와주고 있고, 큰 대회 때마다 자원봉사하러 와주는 분들이 있으니 참 고맙죠.

Q. 눈물겨운 기억이 많을 텐데 특별히 떠오르는 경기는요?
1998년 브라질 세계 대회, 2003 아르헨티나 세계 대회에 나갔고, 2006 독일월드컵 때는 26일간 11개국을 돌면서 곰두리 축구단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죠. 당시에 우리 축구단이 베켄바우어, 달라이 라마, 엄홍길 등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도 맺었고요. 2011년에는 서울에서 하버드 대학교 축구클럽과 친선전을 했죠. 다음 꿈은 미국에서 친선경기 하는 거예요. 유니폼이 없어서 협회에서 얻어 입히고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 감개무량한 일이죠. 

Q. 정말 열성으로 해오신 덕분이죠. 축구단의 모든 일들을 30년간 수기로 기록해 오셨다고요. 기록의 달인이세요.
창립 때부터 매년 축구회 활동을 다 적어왔어요.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 수 있겠어요? 쌓인 수첩이 10권이 넘었네요. 제 마음을 울리는 시구도 적어놨어요. “한 손은 그대 자신을 도와주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손입니다”라는 샘 레빈슨의 시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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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창립 때부터의 주요일정을 빼곡히 기록한 수첩 ⓒ나눔문화


Q. 나눔문화와 인연도 14년인데 어떤 추억과 의미가 있나요?
처음 나눔문화에 갔을 때가 생각나요. 지인 소개로 박노해 시인을 보러 갔죠. 평소 좋아하던 분이었으니까요. 뜻을 지키기 위해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나눔문화를 만들어서 애쓰고 있다고 들었어요. 시인도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반갑기도 했고요. “공은 둥글다. 지구는 둥글다. 우리 눈물은 둥글다. 우리 내일은 둥글다”라는 시인의 글도 참 멋지잖아요. 나눔문화는 제게 ‘공부하러 가는 곳’이에요. 사람 공부. 가면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촛불집회에 나갈 때마다 늘 나눔문화 빨강피켓이 있어 든든했지요. 나눔문화에서 준 ‘10년 회원 도장’은 축구회 사무실에 있는 모든 책에 다 찍혀 있어요. 왠지 그 도장을 찍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앞으로도 한 팀처럼 힘 모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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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나눔문화 격월간 회원소식지
        <나누는 사람들> 2018년 5-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눔문화 후원회원에게 전해지는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문화의 활동 소식과 우리 시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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