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시대의 심장을 찌르며 세상을 뒤흔들었던 시인 박노해.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오랜 침묵을 깨고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로 돌아왔습니다.

시인은 단 하루도 시를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홀로 어둠 속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시가 무려 5천여 편. 

그 중에 304편을 추렸는데요, 웬만한 소설책보다도 두껍고 서문과 발문, 해설도 없는 유례 없는 시집입니다.

요즘같이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의식 있는 젊은이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길 찾는 사람들이 박노해 시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 광화문의 《나눔문화》로 모였습니다.

나눔문화는 10여 년째 박노해 시인과 함께 국내외 사회실천과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단체입니다. 

따뜻한 미소로 환대해주는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전해준 맛있는 차를 마시며,  

시인이 글로벌평화활동을 하며 수집해온 현지 음악 중 한 곡을 사진, 글과 함께 감상했습니다. 

이어서 박노해 시인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돈도, 스펙도 안 되는 

이런 자리에 오신 분들은 정말 순수하고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라고 첫 인사말을 열었고 

시인의 권유로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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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이 하신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이미 

이 304편의 시집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대학생들은 이 시집을 우리들의 ‘삶의 사전’이다, 

‘삶의 경전’이다 라고 하더라고요.”


"시인님이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하신 강연에서 뵙고, 10년만에 다시 뵙게 되었네요.

 작은 실수 하나도 인정하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라고 인정하실 수 있었나요?"


시인은 "실패해야 헛된 기대를 버릴 수 있다. 틀려야 맞춘다" 라고 합니다.


"단군이래 가장 똑똑하고 지식이 많다는 젊은 세대가 일자리 하나 못 얻고,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는 분들이 정당한 대우조차 못 받고,

사회 양극화는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실로 드러난 실패를 인정할 때, 그때 새로운 혁명이 시작됩니다.

저는 과거 사회주의 혁명을 밀고 갔지만,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것을 보고 결과와 책임을 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지향했던 인간존중과 공동체 정신은 죽지 않고 지금도 가져가고 있습니다.

나무가 죽는다고 영영 죽나요? 죽은 나무둥치가 땅속에 묻혀 썩으면

새로운 나무가 자랄 양분이 되어주는 거죠.

치욕과 절망이 크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땅에 묻지 못하면, 진정한 자기 자신,

시대 변화에 발맞춰 새롭게 진보해가는 자신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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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학점 경쟁에 심지어 배낭여행은 기본이고

인문학까지 스펙쌓듯이 공부하라고 강요받아야하는 이 사회가 밉다고... 

한 여학생이 답답한 심정으로 묻습니다.

 

"시인님의 시집에서 <한 옥타브 위의 사고를>이라는 시를 읽었어요.

아프리카의 척박한 시미엔 산맥에서 자기 몸무게 보다도 무거운 나뭇짐을 머리에 이고 가면서도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저희 젊은이들도 한 옥타브 높은 삶을 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젊은이들에겐 저항이 곧 대안입니다.

기성세대들 중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해 비판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이건 폭력이죠.

어렸을 때부터 대학 자격증 시스템과 시장과 국가시스템에 체계적으로 길들여 놓았으면서,

세금을 받으며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주인에게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죠.

  

지금 젊은이들은 네 가지 굴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화된 자본권력이 만든 전 지구적 사회양극화 시스템입니다.

두 번째는 정보의 폭주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혼란입니다. 

80년대는 군사독재가 주입했던 극우·반공이라는 잘못된 의식을 깨뜨리는 것이 절실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지식의 홍수가 우리를 덮쳐서 혼란스러운 시대죠.

지식은 넘쳐나도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신념’은 모두 증발해 버린 시대잖아요.

세 번째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최후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억압의 삼각동맹(대학, 국가, 시장)’이 우리 삶 구석구석으로 침투해 들어와 

값비싼 명문대 자격증과 명품이 삶의 잣대가 되어 끊임없는 비교경쟁으로 상처 받고 있습니다. 

그 경쟁 레이스에서 혼자 벗어나려고 하면 죽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죠. 

네 번째 굴레가 가장 넘기 힘든 굴레인데, 바로 자기중심주의입니다. 

심지어 좋은 일, 의로운 일조차도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저한 개인주의, 아니 이기주의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굴레입니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상처받는 시대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한 자기중심주의는

우리 젊은이들의 영혼을 점점 옭아매고 있습니다. 

개인으로 외롭게 고립되어 상처 받을 까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누지도 못하죠.

옳고 그름도 없고, 오직 다름만이 있을 뿐이라고 미끄러져 버리는 인간관계만 남았습니다. 

서로 나누며 의지하고, 존중하며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공동체 문화가 다 파괴되고,

어렸을 때부터 시멘트 위에서 자라나며 부모에게 길들여진 젊은이들은 

철저하게 자립기반이 파괴되고 감각지까지 퇴화되어 버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뒤에 사람이 있으면 잠시 문을 잡아줘야 한다는 기본적인 배려 감각도 

TV 광고를 통해 교육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죠.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멋대로 해라, 이것도 전형적인 미국식·서구식 개인주의입니다. 

코리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 한 잔, 책 한 권에도 세계 50개국 노동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경제력으로 전세계 상위 기득권 10위권에 들어간 코리아가 

67억 인류 중에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수탈해서 살고 있는 거죠.

지구시대 자기 발 밑을 돌아봐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굴레인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한 20대 청년이 심장이 떨려 일어날 수 없다며 

자리에 앉은 채 다음 질문을 이어갑니다.

 

"저는 아직 자기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흔들리고 유혹을 받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매우 섬세한 사람이에요. 

섬세한 사람이 상처도 많이 받잖아요.

오랜 수배 생활과 감옥 생활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되어서도

좌우 양쪽에서 날아오는 칼날 같은 비난에 많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제가 미치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때는 그런 제가 밉기도 합니다. 젊고 꽃다웠던 동료들이 정말 많이 죽었는데,  

나는 그런 험한 시대에서 살아 남은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생을 두고 꼭 가야만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날마나 흔들립니다. 
그런데 흔들리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만큼 강한 건 없죠. 유연한 신념만큼 강한 신념이 없어요. 
지나고 보니 옳은 길은 언제나 울면서 손해 받는 쪽이더라고요.
후회하게 될 때는 조금이라도 내가 타협했을 때이고요.  
그것을 깨닫고 나니 중요한 결단 앞에서는 단순해집니다.   
 

혼자서는 자기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합니다.

혼자서 극복하겠다는 것조차 또 하나의 자기중심주의죠. 

좋은 벗들을 만나고, 함께하십시오.

붓다의 제자인 아난다가 어느날 붓다에게 말했습니다.

'스승이여, 좋은 벗들과 함께하는 것이 깨달음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붓다가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좋은 벗과 함께하는 것이 깨달음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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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한 여성이 다시 묻습니다.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예술을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요.

결국 행동으로 이끌지 못하고 그저 관념으로만 끝나버리는데요,

진정한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예술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사는 동네에 김씨라는 농사꾼이 있는데요, 다섯 마지가 논밭에 짓는 노랑색, 빨강색, 초록색, 

연두색 작물들이 순서대로 익어나면 색감이 그렇게 아름답고요, 쌓아놓은 볏단 까지도 어떤 설치 예술보다 

아름다워요. 그 분도 논밭에 역광이 아름답게 비출 때면 내가 예술가이고 시인이 된 것 같다고 껄껄 웃으시고요.

대지에 농사 짓고 살림하는 전 세계 민초들은 이렇게 일상 생활문화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꽃피워내십니다. 

그것이 진짜 예술인 것 같아요. 전 그 분들을 뵈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근원적 질문을 늘 하게 되죠. 

지금 '예술이다' 하는 것은 대학가서 비싸게 배우고, 유학 갔다 와서 레벨을 높이며 문화적 카스트를 만들어 가지요. 

 

제가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일본 국가대표였던 나카타입니다.

나카타는 전성기에 은퇴를 선언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프로에서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뛰면서 진짜 축구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축구를 하던 시절에 느꼈던 행복을요. 

그 기쁨을 되찾기 위해, 저는 세계 곳곳의 가난한 나라로 떠납니다. 

아이들과 골목 축구를 하며 그 때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축구의 본령은 월드컵이 아닙니다. 각자가 행복하게 뛰어노는 골목 축구가 진짜 축구의 본령인 거죠.

요리가 하고 싶은데 왜 이탈리아 유학을 가야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으며 기쁨을 나누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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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직장을 그만둔 여성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사회 속에 정말 대안은 있는 건지 진지하게 물어옵니다.

 

"이미 질문 속에 답이 들어 있네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이 끝없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이런 질문하는 것조차 힘드셨죠?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여야 합니다. 

많은 분들의 최종적인 꿈이 무엇인가요?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은퇴하면 자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잖아요. 

꽃을 가꾸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면서요.

지금 바로 그렇게 살면 될텐데 참 어렵습니다. 진짜 부자는 시간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을 오직 돈으로만 계산하죠. 

'내가 지금 투자한 시간과 일들이 어느 정도 액수로 환산되느냐'는 거죠.

 

이제 일자리다운 일자리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첨단 기계 자동화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첨단기계가 일하면 사람은 일할 필요가 없죠. 

4대강 공사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늘어나는 것은 고가 중장비뿐입니다.  

그나마 생긴 일자리도 일용직이 대부분이라고 하죠.   

우리 경제에서 실물경제에 쓰이는 화폐는 2%뿐이고, 

나머지는 빛의 속도로 떠다니는 투기 자본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도 겪어봤지만 세계 물가 변동에, 주식 시세에, 아파트 값에, 

내 삶이 좌우되고 일희일비하는 이런 삶,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석유문명도 이제 정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집집마다 태양 전기 시스템을 갖춰갈 수밖에 없고요.

우리가 이번에 배추값 파동도 겪었지만, 기후 변화도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세계 식량값은 점점 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나눔 농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지어 먹어야죠.

나눔문화 회원들과 주말마다 텃밭을 가꾸는 나눔 농부를 하고 있는데요, 

흙을 밟으니 몸도 건강해지면서 기운이 살아나고,  

함께 노래 부르고 챙겨주며 농사 지으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모조리 빼앗겨버렸습니다.

살 수 있는 능력은 늘어났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좋은 사회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적은 사회입니다.

주어진 물질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길어 올리는 것,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요. 

이러한 대안 삶의 실현을 위해 우리 모두가 좋은 벗이 되어 

진리실험을 해나가며 한번뿐인 소중한 삶을 행복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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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끝나고 이어진 사인회 풍경 (장소: 나눔문화)

 

시인은 12년 만에 시집을 낸 후, 다시 4-5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시인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3시간에 걸친 대화도 끝으로 향합니다.


"말의 무게는, 삶은 얼마나 실려 있는가.

침묵의 깊이에 따라 말의 깊이도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계획하는 일은 중남미 께로족 마을에 아이들 도서관과 축구장을 지어주고,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교도 지원해야죠.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떠다녔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책을 위한 집필도 계속 해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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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존재감이 사라져 가고 달릴수록 영혼이 증발되어 가고 ‘살아남기’가 삶을 잠식해가는 시대, 

시인은 이 빨간시집이 우리를 사라지게 하는 저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레드 카드'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부디 이 시집의 제목처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잃지 말고, 

영혼을 버리지 말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시인의 간절한 기도가 담긴 헌시로 대화를 마쳤습니다. 

함께한 분들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가슴으로 시 낭송을 들었습니다. 시인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댓글 '2'

뭉클

지니0

_ 2011.05.22 14:54
페이스 북에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옮겼어요~ 마지막에 있는 사진도 함께요.^^(시인님의 사인이 있는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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