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5705.JPG



2003년 봉천동 산동네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나누는 학교>. 14년째 농사를 지어온 어린 농부들은 올가을 토종벼를 기르는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님을 만났습니다. 벼 수확과 탈곡을 하며 농부님의 농사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벼가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전 과정을 손발로 체험하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토종씨앗을 지켜나가는 <나누는 학교> 어린 농부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쌤, 오늘 벼 캐러 가는 거죠?"

룰루랄라~ 논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쌤! 오늘 우리 벼 캐러 가는 거죠?" 벼를 '캔다'는 말에 미소가 나오면서도 마음이 짠했습니다. 주로 텃밭 농사를 지어왔던 아이들은 벼도 감자처럼 '캐는' 것인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벼 수확해 본 적 있어?"라고 물어보니 역시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새로운 기대를 안고 토종벼와 이근이 농부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IMG_4693.JPG

IMG_4879.JPG

IMG_5505.jpg



아이들과 토종벼의 첫 만남

농부님의 바구니 안에는 알록달록 다양한 벼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 농장에 110여 가지의 토종벼가 있어요. 국내에 모두 450여 종이 남아있고요. 그런데 원래 한반도에 몇 종류가 있었을까요? 무려 1,500여 종이 있었어요." 우와~ 아이들이 놀랍니다. "동네마다 재배하는 벼가 달랐고, 산 넘어가면 밥맛도 달라졌죠.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을 거치며 수확량이 많은 품종만 살아남았어요. 지금 우리가 먹는 밥은 토종쌀이 거의 없어요." 농부님이 바구니에서 벼를 꺼내 보여주며 "혹시 이 벼 이름 아는 사람?"하고 묻자 "벼는 그냥 벼 아닌가? 이름도 있어요?"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얘는 '대추벼'에요. 달아서 그래요^^  봄을 기다리는 벼 '대춘도', 암꿩을 닮은 '까투리찰벼', 수꿩을 닮은 '장끼벼'.  모두 농부들이 이름을 짓고 대대로 물려온 벼예요."



1,000배로 늘어나는 한 톨의 낟알

아이들이 또 놀랐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벼농사 처음 시작할 때 세 평으로 시작했는데 그 다음 해에 몇 평을 심을 만큼 벼를 수확했을까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50평이요!", "100평?" 아이들의 정답 맞히기에 농부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무려 3,000평이에요. 이 낟알 하나를 심으면, 싹이 터요. 그게 '모'가 돼요. 그걸 가지고 모내기를 해요. 모가 자라면서 이삭을 패고, 이삭이 나오며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거죠." 농부님의 말을 들을수록 아이들은 빨리 논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  "얘들아 가자~" 한달음에 논으로 향했습니다. 



IMG_5212.JPG

IMG_5587.JPG

IMG_5549.JPG



처음으로 논에 들어가다 

한 손에 낫을 들고, 아직 질퍽한 논에 들어가니 몸이 기우뚱~  걷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적응이 빨랐습니다. 금세 여기저기서 벼를 쥔 손이 불쑥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쌤~! 이거 봐요! 벼 수확했어요!" 하지만 웃음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구구" 신음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이때 논에 살던 우렁이는 동생들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이들 손엔 우렁이가 한가득입니다. 나중엔 아예 신발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달리기 시합까지 벌였답니다. 



큰 포크를 닮은 전통 탈곡기 '홀태'

수확한 벼를 한 아름 안은 아이들은 '홀태' 앞에 모였습니다. 홀태는 벼에서 낟알을 떨어뜨릴 때 쓰는 도구인데,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큰 포크"처럼 생겼습니다. 홀태 사이사이에 벼를 끼우고 죽 잡아당기면 낟알과 볏짚이 분리되는 겁니다. 낟알은 다시 도정기에 들어가, 껍질과 쌀알로 분리됩니다. 아이들은 갓 도정한 햅쌀을 집어 고소함을 맛보았습니다.



IMG_5353.JPG

IMG_5755.JPG



밥맛이 꿀맛! 

일과를 마치고 모여 앉은 식사시간. 된장국에 잘 익은 김치와 콩나물무침, 매콤한 제육볶음까지 밥상에는 맛있는 반찬이 한가득이었지만,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바로 '밥'이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갓 지은 밥은 꿀맛^^이었던 거죠. "이상하다? 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 "우리가 힘들게 일해서 그런가?", "아니야. 토종쌀이라 그래.", "가마솥 밥이 갑이야!" 밥맛의 이유를 찾기도 전에 등장한 누룽지는 정말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내 손으로 쌀밥 한 그릇 만들어 본 날 

고단할 만도 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벼 베기가 이렇게 재밌다니!", "낫을 쓰고, 낫을 가는 법을 알게 됐어요.", "논에 맨발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는데 흙 밟는 느낌이 좋았어요." 논에 들어가 벼를 수확하고, 모아서 묶어서 말린 다음 홀태로 벼를 털고, 도정해서 밥을 지어 먹어 본 하루. 쌀 한 톨과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몸으로 알게 된 아이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낟알과 이삭을 자꾸 주웠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일구는 것보다 사고 버리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의 하얀 손은 검은 흙을 닮아가고,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했던 아이들의 눈에 누런 들판과 파아란 가을 하늘이 담긴 날. '토종씨앗'을 닮은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 날이었습니다.


글 | 이현지 <나누는 학교> 팀장



46cec26fcfa349b303f5859ffa43f034.jpg
  위 글은 나눔문화 격월간 회원소식지
  <나누는 사람들> 2017년 9-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눔문화 후원회원에게 전해지는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문화의 활동 소식과 우리 시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한 권에 담긴 <나누는 학교 10년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4] 이현지(나눔.. 2014.10.15 11511
공지 나누는 학교를 소개합니다! [1] 나눔문화 2010.08.18 65284
» [나누는 학교] 토종벼 '수확 여행', 쌀이 밥이 되기까지 나눔문화 2017.11.29 99
344 [나누는 학교] 고구마밴드 7기 연습시작~ 이현지 (나눔.. 2017.10.30 73
343 [나누는 학교] 카메라 들고 떠난 '평화여행' 이현지 (나눔.. 2017.10.29 101
342 [나누는 학교] '사진으로 말해요' 첫번째 날 이현지 (나눔.. 2017.08.30 209
341 [토종씨앗 여행] "이 작은 씨앗 안에 밥상이 들어있다구요?" 이현지 (나눔.. 2017.07.12 400
340 [나누는 학교] '마음씨앗'을 찾아 떠난 여행 이현지 (나눔.. 2017.06.19 239
339 [나누는 학교] 씨앗 심는 개학식 이현지(나눔.. 2017.04.27 1006
338 [모집] 2017년 <나누는 학교> 친구교사를 기다립니다 이현지(나눔.. 2017.04.05 1039
337 [나누는 학교] 6년전 후쿠시마 참사를 기억하며.. 이현지(나눔.. 2017.03.15 358
336 아이들이 직접 쓴 [고구마 밴드 연습일지] - 두번째 이현지(나눔.. 2016.11.06 639
XE Login
나눔문화 후원회원님께서는 로그인 하시면
회원정보수정, 후원금영수증 발급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없이도 사이트 이용과 글쓰기는 가능합니다.
자세한 안내 보기


후원회원 ID 만들기